2024년 3월 15일 금요일

3월 15일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식의 책이다. 그러니까 작은 조각들이 모이고 연결되면서 어떤 세계를 구축하는 책 말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쓰여진 방식이 좋다.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퍼즐이 완성된다는 생각은 지금 내 생각과는 다르다. 그냥 작은 조각들은 작은 조각들인 채로 남아 있어도 좋을 것이다. 

2024년 2월 10일 토요일

2월 10일

 집에 왔다. 집에 오니 집의 구조가 바뀌어 있었는데, 나는 바뀐 지점에서 구조를 한 번 더 바꾸었다. 어떤 가구는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어떤 가구는 자리가 아예 바뀌었다. 사실 이 자리가 내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일기를 쓰는 건 그래도 내 정신이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나는 방금 전까지 어떤 일로 인해, 거의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기를 쓴다는 것이 내가 그렇게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내가 반복하고 반복하는 일들. 조금씩 다르게. 전혀 다른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에 휩싸이고, 이 실수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반복될 것이며, 그 실수로 인해 나에게 악영향이 큰데, 그런 실수를 막을 수가 없으리라는 느낌. 

핵심은 내가 내 멋대로 하면서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으로 만족하자. 내가 그렇게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12월 31일

 

일기 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쓰는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 오늘 여기 앉게 된다. 일기를 자주 쓰기도 했지만, 사실 아예 안 쓴 거나 다름없기도 하다. 이렇게 쓰려고 하면 또 누군가 나를 부르고, 아랫층에서 누가 잠깐 와보라고 하고, 갑자기 배가 아프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다시 일기를 계속 써야하나 의심이 들기도 하고, 오늘은 아닌가보다 하고 일기를 멈추거나 지우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사실 내가 가장 일기를 많이 쓴 곳은 우연한 공간에서이다. 사람들이 많은 시끄러운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그런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혼자 들어가고 나갈 때 역시 혼자 나온다. 내 공간, 나만의 공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바깥에서 더 많은 걸 써왔고 쓸 것 같다. 


2023년 9월 30일 토요일

9월 29일

 

일 끝나고 집에 왔다. 금요일 밤이라서 지하철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도 많고 지하철 안도 덥고 그렇다. 집에 와서 우선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오늘 꿈에서 뭔가를 쓰는 꿈을 꿔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뭔가 쓰는 꿈을 꾸고 난 뒤에 눈을 떴는데, 내가 어떤 집에 있었고, 그 집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우울한 집이다. 아무튼 햇빛이 잘 안 드는 그 집에 나와 엄마가 있었고 엄마가 냉동으로 얼려 놓았다는,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이는 신생아가 식탁 위에 있었는데, 알고 보니 살아 있었고, 알고 보니 그게 내 아이였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뒤에 눈을 떴는데, 내가 누구 옆에 누워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군지 꿈에서 깨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023년 9월 2일 토요일

9월 1일

 

일기를 쓰자.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다 쓰지는 못 할 것이다. 사실 다 쓸 필요도 없다. 지금은 남에 집에 신세를 지는 신세다. 그런데 오늘 셋 다 일을 하고, 내가 집에 제일 일찍 도착했다. 나는 그럴 걸 알고 있었다. 잠시 혼자 있게 되리라는 것을. 이렇게 혼자 있으면 또 나도 모르게 뭔가 쓰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뭔가를 또 쓰게 되겠지. 나도 모르는 뭔가를 또 쓰겠지.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걸 우연히 다시 읽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나는 오늘을 기억하겠지. 오늘이 어땠는지는 그 때 가서 알게 되겠지. 나는 그냥 쓸 뿐이겠지. 어쩌면 쓴 걸로 뭔가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결국 안 하겠지.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 피곤하겠지. 나는 그냥 쓸 뿐이겠지. 별로 바라는 것도 없겠지.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정말 없는 것 같겠지. 얼마 전에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 없이 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뭔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세상에 정말 바라는 것 없이 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를 멈추겠지. 하지만 믿겠지. 하지만 나는 그냥 쓸 뿐이겠지. 심심해서 쓰기도 하고, 시간이 남아서 쓰기도 하고, 할 말이 있어서 쓰기도 하고, 할 말이 없어서 쓰기도 하고, 혼자 있어서 쓰기도 하고, 그런데 대체로 누구랑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쓰게 되겠지. 나중에. 나중에. 네가 없을 때 쓰게 되겠지. 네가 있을 때는 같이 놀고.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내가 갑자기 오늘처럼 식탁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뭔가를 쓰게 되겠지. 그런데 나중에 그걸 쓴 게 언제였는지, 도대체 뭘 하다가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았는지 잊어버리게 되겠지. 사실 그런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겠지. 어색함을 감추느라 과도하게 농담을 한 것을 내일은 후회하게 되겠지. 그런데 나중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나중에는 나중의 중요한 일이 있겠지. 나는 그 중요함의 무게를 피하고 싶겠지. 피하겠지. 그건 나중에도 잘 하겠지. 그런데 나중에는 뭔가를 읽어도 안 읽어도 상관없는 세상이 오겠지. 굳이 읽으려고 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또 모를 일이지. 유행처럼 읽기가 유행이 될 수도 있겠지. 유행이 있으면 다 따라하겠지. 유행이든 말든 나는 그냥 쓰겠지. 뭐든 쓰겠지.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잘 살겠지. 그래도 쓰긴 쓰겠지.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A

 최근에 A작가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의 책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근데 그렇다고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영화를 보았는데, A작가의 책과 정반대의 것을 하고 싶어하는 듯한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둘 다 좋다고 생각했다. B감독은 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을 교차시키다가 결국 그 경계가 사라지는 느낌의 영화를 만든다. 사적인 나가 존재할 수 있나 그런 느낌. A작가의 책에서 너무 사적이고 자아가 흘러넘쳐도 그건 그것대로 또 흥미롭다. 그렇게 쓰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저렇게 영화 만드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싫으면 안 읽으면 된다. 싫은데 어떤 책을 굳이굳이 읽으며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말고도 괴로운 일들은 많다.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좋은 접근법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자기에게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 그 취향을 토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아무리 똑같이 배끼려고 해도 결국은 본인의 특징이 묘하게 들어 나게 되는 것 같다. 

2023년 7월 19일 수요일

7월 18일

어릴 때 읽은 그리스 신화에서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누구를 풀어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거기서 그 사람은 지상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사실 도착한 게 아니었다. 
어제 나는 그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뒤를 돌아봤던 것 같다. 근데 그것도 사실 내 착각이다. 그 사람은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뒤돌아 봤다가 괜히 서로 무안하게 눈이 마주치고, 서로 눈을 피하다가 나는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사실 나는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그냥 앞만 보고 갔으면 되었는데. 연락도 안 할 건데 괜히 친절하게 굴고 그 사람 기분까지 걱정해버린 것이다. 
뒤는 안 돌아보고 그냥 가도 된다. 그 그리스 신화의 인물은 오르페우스다. 

6월 4일

  이 도시에서, 아니 여기서 매일 듣는 소리 중의 하나는 교회의 종소리다. 어떤 때는 종소리가 나는 구나, 의식을 하게 되고 어떤 때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종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는 일요일에는, 일요일에는 종소리가 조금 일찍, 10시가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