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자.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다 쓰지는 못 할 것이다. 사실 다 쓸 필요도 없다. 지금은 남에 집에 신세를 지는 신세다. 그런데 오늘 셋 다 일을 하고, 내가 집에 제일 일찍 도착했다. 나는 그럴 걸 알고 있었다. 잠시 혼자 있게 되리라는 것을. 이렇게 혼자 있으면 또 나도 모르게 뭔가 쓰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뭔가를 또 쓰게 되겠지. 나도 모르는 뭔가를 또 쓰겠지.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걸 우연히 다시 읽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나는 오늘을 기억하겠지. 오늘이 어땠는지는 그 때 가서 알게 되겠지. 나는 그냥 쓸 뿐이겠지. 어쩌면 쓴 걸로 뭔가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결국 안 하겠지.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 피곤하겠지. 나는 그냥 쓸 뿐이겠지. 별로 바라는 것도 없겠지.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정말 없는 것 같겠지. 얼마 전에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 없이 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뭔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세상에 정말 바라는 것 없이 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를 멈추겠지. 하지만 믿겠지. 하지만 나는 그냥 쓸 뿐이겠지. 심심해서 쓰기도 하고, 시간이 남아서 쓰기도 하고, 할 말이 있어서 쓰기도 하고, 할 말이 없어서 쓰기도 하고, 혼자 있어서 쓰기도 하고, 그런데 대체로 누구랑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쓰게 되겠지. 나중에. 나중에. 네가 없을 때 쓰게 되겠지. 네가 있을 때는 같이 놀고.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내가 갑자기 오늘처럼 식탁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뭔가를 쓰게 되겠지. 그런데 나중에 그걸 쓴 게 언제였는지, 도대체 뭘 하다가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았는지 잊어버리게 되겠지. 사실 그런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겠지. 어색함을 감추느라 과도하게 농담을 한 것을 내일은 후회하게 되겠지. 그런데 나중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나중에는 나중의 중요한 일이 있겠지. 나는 그 중요함의 무게를 피하고 싶겠지. 피하겠지. 그건 나중에도 잘 하겠지. 그런데 나중에는 뭔가를 읽어도 안 읽어도 상관없는 세상이 오겠지. 굳이 읽으려고 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또 모를 일이지. 유행처럼 읽기가 유행이 될 수도 있겠지. 유행이 있으면 다 따라하겠지. 유행이든 말든 나는 그냥 쓰겠지. 뭐든 쓰겠지.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잘 살겠지. 그래도 쓰긴 쓰겠지.